
넷플릭스에서 딱히 볼 게 없다 싶을 때, 제목만 보고 그냥 틀어본 영화가 있습니다. '하트맨'이었습니다. 주인공이 권상우 씨라는 걸 보고 예전 히트맨 시리즈가 생각났는데, 막상 보고 나니 결이 꽤 달랐습니다. 가볍고 유쾌한 가족 영화를 찾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고려해볼 만한 작품입니다.
아역배우 김서원이 살린 영화의 재미
솔직히 처음에는 큰 기대 없이 틀었습니다. 히트맨 시리즈를 봤던 분들이라면 아마 비슷한 마음이셨을 겁니다. 권상우 배우와 최현석 감독의 조합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더더욱요.
하트맨의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이혼 후 딸 소영을 혼자 키우는 돌싱남 최승민이 첫사랑이었던 한보나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문제는 보나가 이른바 '노키즈(No Kids)' 캠페인에 참여할 정도로 아이를 극도로 싫어하는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여기서 노키즈란 아이 동반 손님의 입장을 거부하거나 아이와의 생활 자체를 기피하는 가치관이나 운동을 뜻합니다. 승민은 딸의 존재를 숨긴 채 보나와 비밀 연애를 시작하고, 이 설정에서 영화의 핵심 갈등이 만들어집니다.
제가 직접 봐보니, 이 설정 자체는 사실 새롭지 않습니다. 비밀을 숨기고 연애하다 결국 들킨다는 로맨틱 코미디 공식은 헐리우드에서도 수십 번은 써먹은 클리셰(cliché)입니다. 클리셰란 너무 많이 반복되어 신선함을 잃은 표현이나 이야기 구조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아역배우 김서원이었습니다.
딸 소영 역을 맡은 김서원의 연기는 한 마디로 '능청'입니다. 어른들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태연하게 자기 할 말을 다 하는 캐릭터인데, 이 아이가 등장할 때마다 장면의 온도가 확 바뀝니다. 지루해질 만한 타이밍에 정확히 웃음을 투입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고, 저는 보면서 '이 영화, 이 배우 하나로 반 이상은 먹고 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역배우 김서원의 능청스럽고 자연스러운 코미디 연기
- 박지환, 표지훈 등 감초 조연들이 만들어내는 유쾌한 에피소드
- 문채원의 변함없는 스크린 존재감과 자연스러운 로맨스 호흡
- 12세 관람가임에도 예상보다 솔직한 스킨십 표현
이 영화가 2015년 아르헨티나 영화 '노키즈'를 원작으로 한 리메이크 작품이라는 점도 주목할 부분입니다. 리메이크(remake)란 기존 작품의 스토리와 구조를 바탕으로 새로운 배우, 언어, 문화권에 맞게 재제작한 작품을 말합니다. 원작이 있다 보니 이야기의 기본 골격 자체는 탄탄한 편이었고, 그게 영화가 지루하지 않게 흘러가는 데 기여했다고 봅니다.
로맨틱코미디로 보기엔 올드한, 그러나 권상우의 뚝심
영화가 끝나고 나서 든 솔직한 감상은 '무난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 무난함이 꼭 칭찬은 아니었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이 예측 가능하다는 건 처음부터 느껴졌습니다. 비밀이 결국 들킬 것이고, 갈등이 생기고, 화해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서사 구조는 장르 문법상 거의 공식에 가깝습니다. 이른바 내러티브 아크(narrative arc)가 전형적이라는 의미인데, 내러티브 아크란 이야기가 시작에서 절정, 해소로 이어지는 감정적 흐름의 곡선을 말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 공식대로 흘러가더라도 연출이나 배우의 케미가 살아있으면 충분히 재밌을 수 있는데, 하트맨은 그 중간 어딘가에 위치해 있습니다.
특히 엔딩 연출은 아쉬웠습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수준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마무리였는데,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전반적으로 2010년대 초반 한국 로코(로맨틱 코미디의 줄임말) 감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021년에 촬영되어 5년 만에 개봉한 작품이라는 점도 그 올드한 느낌에 한몫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권상우 씨에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고 싶습니다. 히트맨 시리즈부터 하트맨까지, 코미디 장르를 꾸준히 고수하는 행보는 쉽지 않은 선택입니다. 한국 영화 산업에서 배우의 장르 고착화는 흥행 리스크와 직결된다는 점이 업계에서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혹평을 받은 작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방향으로 계속 걸어가는 것, 저는 그 뚝심이 응원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흔히 '저예산, 저위험, 중간 수익'의 장르로 분류되지만, 관객의 감정 이입을 끌어내기 위한 앙상블(ensemble) 구성이 실패하면 그냥 지루한 영화가 되어버립니다. 앙상블이란 주인공 한 명이 아닌 여러 조연들이 균형 있게 역할을 나눠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캐스팅 방식입니다. 하트맨은 이 점에서 합격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역배우 김서원을 중심으로 박지환, 표지훈이 적재적소에서 웃음을 만들어내며 앙상블이 어느 정도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관객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주연보다 조연의 개성이 관람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는 분석도 있습니다(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하트맨은 그 흐름을 비교적 잘 따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하트맨'은 티어(tier) C 수준의 영화라는 평가가 적절합니다. 티어 C란 기준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잘 만든 작품은 아니지만 시간이 아깝지는 않은 작품'을 의미합니다. 억지 개그로 점철됐던 히트맨 2보다는 확실히 낫고, 넷플릭스에서 가볍게 볼 만한 가족 영화를 찾는다면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엔딩의 오글거림을 감수할 수 있고, 아역배우의 능청스러운 연기에 웃음이 터지는 분이라면 100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저는 보고 나서 크게 감동받지는 않았지만, 후회도 하지 않았습니다. 넷플릭스 알고리즘이 추천해줬을 때 한 번쯤 틀어봐도 괜찮은 영화입니다.